"훈련도 못 하고 나섰다" 한국 남자농구, 일본 꺾고 12년 만의 금메달

12년을 기다렸습니다.
한국 남자농구가 아시안게임 정상에 다시 올랐어요.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이었습니다.
상대는 개최국 일본, 점수는 67-57.
사상 첫 결승 한일전을 한국이 가져갔습니다.
| 📌 무슨 일이 — 20일 나고야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 한국이 일본을 67-57로 꺾고 금메달. 📌 누가 — 이현중이 27점 18리바운드로 양 팀 최다. 이정현은 7도움. 📌 얼마 만에 — 2014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 아시안게임 통산 5번째 금메달. |
1. 12년 만의 금메달, 무슨 일이 있었나?

20일 낮에 열린 남자 농구 결승이었습니다.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한 번도 지지 않고 올라왔어요.
일본은 홈이었고, 관중도 일본 편이었죠.
그런데 경기는 의외로 조용하게 흘렀습니다.
"전반까지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전반 28-28. 저득점 경기였습니다.
1쿼터 막판 5분은 한국이 아예 득점을 못 했고요.
준결승 전까지 3경기 연속 100점을 넘긴 팀이었는데 말이죠.
그만큼 결승은 결이 달랐습니다.
2. 이현중은 왜 경기를 지배했나?

27점 18리바운드. 양 팀 통틀어 둘 다 1위입니다.
한 선수가 득점과 리바운드를 동시에 쓸어담았어요.
이현중은 안팎을 다 썼습니다.
밖에서는 3점슛, 안에서는 몸싸움.
루즈 볼도 피하지 않고 따냈죠.
일본은 장신 선수들을 번갈아 붙였습니다.
2m를 훌쩍 넘는 선수가 셋이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현중이 지치지를 않았어요.
관중석에서 "디펜스" 구호가 커질수록 슛은 더 들어갔습니다.
한국이 결승에서 성공시킨 3점슛은 10개.
슈터의 팀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죠.
3. 승부는 어디서 갈렸나?

"3쿼터부터 경기가 기울었다"
3쿼터, 슈터들의 경연.
변준형과 이현중, 이정현이 장거리포를 던졌습니다.
일본도 3점슛으로 맞받았지만 흐름은 한국 쪽이었어요.
여기서 55-47까지 벌어졌습니다.
4쿼터 7분 24초 전, 13점 차.
이정현의 슛이 들어가 62-49가 됐습니다.
이정현은 지능적으로 골밑을 파고들며 찬스를 만들었고요.
수비가 헐거우면 직접 마무리했습니다.
일본은 여기서 급해졌어요.
공격자 반칙을 연발하며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3분 36초 전, 이현중의 팁인.
다시 11점 차. 사실상 쐐기였습니다.
노란 줄로 표시한 구간이 점수가 벌어진 지점입니다.
| 1쿼터 막판 5분 | 한국 무득점, 일본에 리드 허용 |
| 전반 종료 | 28-28 동점 |
| 3쿼터 | 55-47, 한국이 달아나기 시작 |
| 4쿼터 7분 24초 전 | 이정현 득점, 62-49 |
| 4쿼터 3분 36초 전 | 이현중 팁인, 11점 차 |
| 최종 | 한국 67-57 일본 |
4. 결승 당일, 왜 훈련을 못 했나?
"훈련도 못 하고 코트에 섰다"
결승 당일 아침, 대표팀에 차량이 오지 않았습니다.
조직위원회 배차가 되지 않아 오전 훈련을 통째로 건너뛰었어요.
결승 날 루틴이 깨진 겁니다.
숙소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190㎝가 넘는 선수들이 컨테이너 좁은 침대에서 잠을 설쳤죠.
경기장 안에서도 판정은 은근히 홈 쪽이었고요.
농구장에서 만난 한 일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승전 오전 훈련을 못 하게 된 것에 대해 한국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그러고도 이겼습니다.
이정현은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했어요.
5. 1승 5패였던 팀이 어떻게 바뀌었나?
대회 전 전망은 어두웠습니다.
라트비아 출신 니콜라이스 마줄스 감독 부임 뒤 성적이 1승 5패였거든요.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지난해 12월 선임한 첫 외국인 감독입니다.
8월 15·16일 일본과의 친선경기는 두 번 다 졌습니다.
2차전은 66-95, 29점 차였어요.
감독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안팎에서 나왔습니다.
그 팀이 한 달 만에 무패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마줄스 감독은 시스템 이야기를 꺼냈어요.
"여름 내내 누가 뛰어도 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한국은 귀화선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귀화·혼혈 선수를 다섯 명이나 뽑았고요.
높이에서 밀리는 싸움이었죠.
그 자리를 이승현과 장재석이 몸으로 막았습니다.
이현중에게는 기록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어머니 성정아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금메달리스트예요.
모자 아시안게임 금메달 — 흔한 일이 아닙니다.
보상도 따라왔습니다.
대표팀 12명 중 7명이 미필이었거든요.
상무에서 11월 제대 예정이던 이우석은 조금 일찍 군복을 벗게 됐습니다.
한국 남자농구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통산 다섯 번째입니다.
1970, 1982, 2002, 2014, 그리고 2026.
3년 전 항저우 8강 탈락을 생각하면, 꽤 멀리 돌아온 셈이죠.